Travel2014. 1. 20. 16:10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외롭다. 무섭도록 고독하다. 그런데 난 그런게 참 좋았다. 고독의 끝에서 나도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불쑥 찾아왔다. 그것은 혼자 있는 나의 불안함을 없애주었고, 그것마저 자유로웠던 것 같다.

 

나의 십대. 나의 청소년기는 어땠나.

길을 자박자박 걸으면서도 그 발걸음의 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었다. 온통 예민해져버린 신경에 집중하며 그렇게 나를 조심히 다듬으며 지냈다. 그때 했던 생각들은 쉽게 사라져버릴 수 있으니, 나이가 들어버린 나를 위해 메모로 대신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일종의 증거물이었다.

 

나의 스무살 초반은 어땠나.

인도여행은 고작 2004년 한달가량이었고, 바라나시는 2일 이었는데...소 한마리 버티고 서 있으면 지나갈 수 없던 그 좁고 구불거리고 거지도 많고 똥도 많았던 그 길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밤길은 무서웠고, 내가 묵고있던 숙소 앞으로는 시체를 태우고 곡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렇게 무서웠는데도 난 '짜이'를 먹고싶다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걸인처럼 담요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숙소 건너편 짜이가게로 뛰어가서 차를 마셨었다.

 

나의 스무살 중반은 어땠나.

클레오파트라처럼 머리카락 잘라달라고 무작정 카이로 근처의 이발소로 들어가 머리카락을 잘랐다. 거울을 보니 아주 촌스러운 여자애가 웃긴 가발을 쓴것처럼 보였다. 그 이후로는 헤어스타일이 보이지 않게 히잡을 두르고 다녔다. 뭐 그 나라에선 원래 그렇게 다녀야했지만, 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룩소르 밤거리와 시와 오아시스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때의 나는 항상 혼자 집(숙소)으로 걸어 돌아왔다. 가보지 않았던 다른 길로 멀리 멀리 돌아서. 그러다가 어느 날엔 떼로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들 무리를 마주쳤고, 그 중 한명의 소녀가 손에 쥔 죽은새를 내게 건네어주기도했다. 사막에서는 내리는 별의 향연을 구경하지 못했다. 3월의 이집트 사막의 밤은 너무 추웠기에 투어하던 곳에서 준비해준 텐트안에서 자야했다. 새벽에 일어나 흔적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아스라히 흩어지는 새벽 안개와 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도 아쉬웠다. 당연히 사막 여우도 못봤다.

 

나의 서른살은 어땠나.

지친 심신을 달래기위해 말라카에서 9일을 보내고 쿠알라룸푸르에서 3박을 했다. 쿠알라룸푸르라는 도시명은 발음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관광지는 하나도 보지 않았고 그저 외곽쪽으로만 돌아다녔다. 시끄러워서 정신이 멍해졌던 인도, 네팔, 태국과는 다르게 그곳의 사람들은 조용하고 차분해서 참 좋았다.

 

서른의 히말라야에선 어땠나.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세상이 녹록치않았던 것 같다. 티끌처럼 작은 가능성 하나만 가지고 중도 포기를 하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고산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걸리기 전 물을 많이 마셔야했고, 증상이 오면 절대 물을 자주 먹어서는 안되었다. 나는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엄청 자주 마셨다. 가지고 올라간 2리터의 물은 하루~이틀사이 다 떨어졌기때문에. 히말라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을때에는 그 산의 기운을 내가 온통 흡수하는 것 같은 쾌감도 있었다. (원래는 그러면 안된다고 함. 배탈이 걸릴 확률때문에. 난 멀쩡했다. 더 건강해지는 것도 같고?) 지치지 않으려고 초코바를 꽤 챙겼으나 역시나 모자랐고, 공수해온 핫팩은 고작 두개뿐이어서 MBC에서 완전 얼어죽을뻔했다. 파카도 없고, 아이젠도 없고, 폴도 없던 내가 어떻게 그곳을 올랐는지 지금도 아리송하다.

산에 오르기 전 나는 정상에 오르게되면 뭔가 기념이 될만한 상징물을 가지고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이 났다. 압력때문인지 갑자기 산 중턱에서 빨간날이 찾아왔고 젖어버린 바지, 자면서 새버린 침낭, 고도가 높아질수록 어렵게 된 샤워, 구하기 어려운 패드와 약....등등이 나를 정신력의 끝으로 몰아갔다. 물티슈 몇개로 연명했던 그날의 나를 잊지 못한다.

여럿이 올랐으나 넷중 하나가 중간지점에서 낙오되었고, 난 사실 많이 외로웠다. 힘이 드는걸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그러나 롯지와 레스토랑을 지나며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풍경에 안도하고 빛줄기에 황홀감을 느끼고, 배고프지 않음에 감사함을 깨달았다. 올라가면서 계속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난 내려오면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물음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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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