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리도 닿지않은 어둠속에서 우두커니 한 강의 시집을 꺼내 읽는다. 그녀의 시어는 아주 오래되고 낡은 빛을 업고서 나의 어둠속으로 찬찬히 들어오는 것 같다. 문득 신기해졌다. 왜 이 여자는 계속, 끊임없이 피와 생체기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검은 그림자, 검푸른 그림자, 죽음. 파란돌, 냇물, 죽음. 혀와 입술, 심장, 통증, 죽음. 생명, 육체, 재가 된 것, 침묵, 죽음.......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던 언어들이 튀어나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리고 언어는 그저 언어로서만 인식된다. 이것이 그녀가 원하는 읽기였던 것일까? 언어 자체로만 인식되는 순수성? 나는 그녀의 시가 오늘따라 불편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녀의 시집을 놓지 못하고 있네.
첫새벽 / 한 강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리믈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를 덮친다
한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박명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
늘 거기 눈뜬 슬픔,
슬픔에 바친다 내
생생한 혈관을, 고동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