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2013. 11. 7. 00:43

생각해보니 그리다가 중간에 엎어버린 그림들이 많았다. 그 당시에는 엄청난 결단력을 가지고 용기있게 엎은거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와서 사진으로만 남은 그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내 행동이 조금 후회스럽다. 이제와서 그 그림들을 보니 그때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그림들이었던 것 같고, 그 그림들을 당장은 완성 못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완성 할 수 있었을텐데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나는 조급했을까. 그 많은...중간에 엎어버린 그림들에게도, 나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작업에 항상 뒤따르는 단어는 베이컨과 프리다칼로.

고깃덩이가 내 그림에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그렸던 것이(그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들을 연결해주는 모티프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보는 이들에게는 엄청 크게 다가왔나보다. 뻔한 상징체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나의 경험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단순화되고 빠져버렸기때문에 쉽게 의도를 파악할수도 없었을 것 같고. 이번 전시에는 고깃덩이가 많이 배제된 그림들이 걸릴 것이다. 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이야기 되는것도 의외였는데(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을까), 내 그림안에 그려진 프리다칼로의 자화상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모두가 초현실이라고 말할 때 그녀만이 이건 내게 지극히 현실'이라고 말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꽤 나를 자극했기 때문이었다(그녀의 그림체가 아니라). 그녀의 사진은 내 그림 안에서 혹은 바깥에서 시선을 교차하는 역할을 한다. 일부러 그녀를 넣었고, 그녀의 눈빛을 강렬하게 그렸다. 그녀의 그림체가 나를 자극하지 않았다고 부정할 이유도, 근거도 없지만 나는 사실 그 접점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따졌을 때 프리다칼로보다도 나는 휘니, Clovis Trouille, Paul Delvaux, jonas burgerts, Neo Rauch, 그리고 레메디오스 바로의 그림체를 좋아하기 때문. 스타일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연결짓는것이 나는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그것이 왜 항상 Old여야 하고 New가 될 수는 없는 것인지. 비슷하다고 말하기 전에 더 새로운 것을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인지. 회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깊이와 너비가 무궁무진한데, 왜 단순 연결을 지어야 하는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대로 그린다. 무엇을 보고 따라하거나 비슷하게 그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적은 없다.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은일은 있을지언정(그것을 부정하면 거짓이 된다). 비슷하다라는 것의 접점이 쉽게 연결지어지지 않으려면 나는 꾸준히 나의 그림을 그리면 된다. 누가봐도 서고운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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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