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내 손길을 기억하는 이 있다면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떨리는 목소리로 들려줄 시 한 수 미리 적으며 울어볼까한다. 햇살의 손길에 몸 맡기고 한결 뽀얘진 사과꽃 아래서 실컷 좀 울어볼까 한다. 사랑한다는 단어가 묵음으로 발음되도록 언어의 율법을 고쳐놓고 싶어 청춘을 다 썼던 지난 노래를 들춰보며 좀 울어볼까 한다. 도화선으로 박음질한 남색 치맛단이 불붙으며 큰절하는 해질 녘. 창문 앞에 앉아 녹슨 문고리가 부서진 채 손에 잡히는 낯선 방. 너무 늦어 너무 늙어 몸 가누기 고달 픈 어떤 때에 사랑을 안다 하고 허공에 새겨 넣은 후 남은 눈물은 그때에 보내볼까 한다. 햇살의 손길에 몸 맡기고 한결 뽀얘진 사과꽃 세상을 베고 누워서.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