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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29 백 마
books2013. 1. 29. 23:11

 

 

갑자기 내 방안에 희디흰 말 한 마리 들어오면 어쩌나 말이 방안을 꽉 채워 들어앉으면 어쩌나 말이 그 큰 눈동자 안에 나를 집어넣고 꺼내놓지 않으면 어쩌나 백마 안으로 환한 기차가 한대 들어오고 기차에서 어두운 사람들이 내린다 해가 지고 어스름 폐가의 문이 열리면서 찢어진 블라우스를 움켜쥐고 시커먼 그녀가 뛰어나오고 별이 마구 그녀의 발목에 걸리나 잠깐만 기다려 해놓고 빈집에 들어가 농약을 마시고 뛰어나온 그녀는 뛰어가면서 몸 속으로 들어온 백마를 토하려 나무를 붙들지만 한번 들어온 말은 나가지 않는다 말의 갈기가 목울대를 간지르는지 울지도 못하고 딸꾹질만 한다 말이 몸 속에서 나가지 않으면 어쩌나 그 희디흰 말이 몸 속에 새긴 길들을 움켜쥐고 밤새도록 기차 한 대 못 들어오게 하면 어쩌나 농약이 성대를 태워버려 지금껏 말한마디 못 하고 백마 한 마리 품고 견디는 그녀에게 물으러 가야 하나 어쩌나 여기는 내 방인데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게스리 말 한마리 우두커니 서 있으니 어쩌나

 

김혜순, 백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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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