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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2015. 4. 2. 17:37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길을 걷는 것은

지붕위에 던져놓은 눈부신 어금니들이 아직
그곳에 있기 때문이고 봄이면 어김없이 돌아와
내 이마 위 아지랑이를 핥는 철새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길을 걷는 것은

당신에겐 사소해 보이는 내 중얼거림이 밤마다
청둥오리처럼 내 몸 밖으로 날아오르기 때문이고
저녁 새 떼의 배 아래를 흐르는 바람을 보면
내 눈동자에도 한없이 다정하게 살이 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길을 걷는 것은

당신의 숨 속으로 들어가야만 보이는 밤하늘을
내가 아직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사사로움으로
눈이내리고 한없이 절벽이 파래지고 풀들이 쓸쓸히
옆구리를 흔들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길을 걷는 것은

한쪽 젖이 잘린 채 당신이 빈 수저를 물고 종일
마루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발이 삔 채 숲에 주저앉아 있는 사슴의
차가운 숨소리를 어느 문장에서 떠올리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길을 멈추는 것은

슬픔은 언제나 가지런한 비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외로워지기에는 너무도 붐비기 좋은
세계다 독한 놈들은 맨 아래층에 산다

우리에게 안식이 있다면 그런 의지일 것이다


김경주 _고래와 수증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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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