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골목길에서 너덜해진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나타났다. 자신을 찍고 있는 내 눈을 전혀 바라보지 않은 채, 계단을 손으로 쓸거나 허공을 바라보거나 빨래가 널어져 있는 담 너머를 응시하곤 했다.
난 혼자하는 여행이 좋았다. 지독한 외로움 끝에서 나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곤 했으니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의 나는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본능적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밤이되면 큰 그림자들이 나를 덮쳤고, 타인들은 거대한 담장을 이루었다. 그것도 장미꽃 향기 폴폴나는 가시 덩쿨로 만들어진 담장. 오래된 벽 안에 둥지를 튼 새들이 내 머리위를 날아다니고, 나무들은 집 한채를 삼켜버리기도 했다. 사람보다 열배정도는 커 보이던 초코송이 모양의 짚풀더미, 거리의 인부들, 골목 어귀에서 차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꼬마 차이왈라들, 나일강 위의 까마귀 떼들... 나만 그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곳을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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