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2026. 5. 1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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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을 읽고 있다. 마리아 투마킨이 쓴 책이고 작년 8월에 구매해 두었던건데 이제야. 책 내용은 좋은데 여러모로 편집이 정신이 없다. 그래서 좋은 내용인데도 정리가 안되고 굉장히 부산스럽게 느껴지는 게 조금은 아쉽다. 읽는 도중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어떤 종류의 힘은 타고나는 거라고, 그런 건 학습되는 게 아니라고 나지(베트남계 난민출신, 호주 거주자)는 말한다. 그건 개인적인 거라고. 발견하고 연마하는 거라고. 우리는 그 힘의 근원을 찾으려고 과거를 끌어와 뒤져 보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 힘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반점처럼 처음부터 거기 있는 거라고." p.263


 전시를 준비하는 도중 나는 엄마 예술가들 모임에 잠깐 합류했었다. 다들 의욕적이었고, 첫날 오티를 하며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며 개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그때만해도 나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회가 나에게 생기다니 하면서. 그러나 모성의 단어를 나누는 자리에서 다른 엄마 예술가 한분이 '나약함과 연약함'을 이야기하셨고, 나는 자연스레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게 됐다.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나에게 너무 힘든 순간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연약함과 나약함을 깨닫지는 못한것 같다고. 도리어 나는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해내는 일들을 보며 나도 몰랐던 자기 효능감을 느낀 적도 없지않아 있다고. 사실 나는 작업 대신 육아를 하며 너무 많은 힐링을 받았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이 매우 맑아졌었다. 내가 작업을 할때의 에너지 1/10만 육아에 투자해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를 눈 앞에서 봤고, 그건 너무 색다른 경험이자 새로운 세계였다. 나는 그 이야기 안에서 적어도 한분 이상에게는 공감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른 어떤 엄마 예술가분이 그런 육아의 효능감을 느끼는 엄마들을 마주했을 때의 불편함을 나에게 얘기하셨고, 또 다른 분은 힘든데 자꾸 안힘들다고 한다며 나에게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의 부정단계 아니냐며 비웃었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나도 그냥 웃으며 넘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의 그 상황이 너무 무례하게 느껴졌다. 육아에서 모두가 힘들어야 하고 모두가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는게 당연한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이 부정적인 단어로만 이야기한게 아니라고 덧붙였는데 그 말 자체도 모순이라고 느껴졌다.
 모두가 각자의 생각과 경험이 다르고, 과거에 겪은 일들의 타격이나 정도가 다르다.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의 그 한마디가 마치 어떤 트리거가 된 것인냥 비아냥의 시작이 되어버리던 그 순간이 너무 슬펐다. 다름을 이야기하면 안되는건가? 엄마는 무조건 힘들고 연약하다 느껴야하나? 나는 도리어 그런 힘든 상황에서 더 나의 강인함을 느꼈다. 이 말이 내가 육아를 너무 잘해서가 아니고 정신승리도 아니라는 건 내 주변인들은 다 알고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대화를 포기해버렸고, 그 연약함과 나약함에 대한 주제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모임은 서로의 힘듦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각자 신체의 움직임으로 그걸 표현하기도 하고 효모도 나눈다. 그런데 나는 엄마 예술가들이 모여서 서로를 위로하는 그런 시간들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잘 모르겠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무언가를 하기 이전에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되지 않을까? 사람은 각자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역치가 다 다르다. 겪어온 환경과 인생의 속도와 힘의 양도 모두 다 다르다. '육아의 힘듦 = 내 자신의 나약함 연약함'이 아니어서 이 모임 안에서조차 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건 또 다른 편가르기가 아닌가. 아이를 육아할 때 나는 허리디스크가 찢어져서 뼈 주사 6대를 맞고 겨우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몸의 힘듦이 나의 나약함이 될수는 없었다. 절대로. 그렇게 결론짓는 순간 나는 강인한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므로. 그리고 나는 육아의 힘듦을 부정한 적이 한번도 없다. 안 힘들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에너지는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고 그렇게 믿고 싶었으니까 말을 한 것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모임을 나왔다. 나는 나이고, 그런 나의 이야기도 존중 받을 수 있는 그런 곳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그 연약함과 나약함이 어디에서부터 나오게 되었는지를.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 아닌가. 이것 또한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그 모임을 마무리하며 나에게 그 이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음에 감사한다.

# 다음에 읽을 책은, 이거! 내장이 막 튀어나올 것 같다고 평을 해주신 독서모임 진 선생님 추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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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