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2023. 5. 26. 02:11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부모님의 시골생활은 처음부터 정말 녹록치 않았는데, 아버지의 전각 박물관 운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고, 먹고사는 문제로 간간히 일을 나가시기도 했고, 박물관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집 안의 수도가 터져 작은 공사와 작품들 보수로 엄청 고생도 많이 하셨다. 이사도 무지 많이 하셨고, 그 사이 아버지의 6000점 넘는 돌들이 옮겨지다가 부숴지거나 금이 가기도 했다. 다시 터전을 잡은 영주에서도 또 몇번의 이사 끝에 작품들을 잘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셔서 얼마전에야 그 공간을 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만성적으로 불편해하시던 아버지의 부비동 쪽 코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엑스레이를 찍다가 폐에서 2.7센치 정도 되는 암을 발견했다. 두달 전 다른 곳에서 찍었던 엑스레이에서는 아주 깨끗했다고 했는데. 그 두달 사이에 그렇게 빨리 커질 수 있는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면서 이런 암 조기발견은 너무나 큰 천운이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내가 시험관을 계속 실패하며 나에게 오지 않은 그 운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이렇게 천운을 누리시는 거라면 전혀 슬프지 않다고 느꼈다. 내가 병원에 생필품과 반찬들을 이고지고 가져갔더니, 그 돌덩이 같이 무거운 걸 바리바리 싸들고 온 딸이 안쓰러웠는지… 아버지가 병상에서 내게 고생했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런거 참 안보내시는 분인데. 나는 아기도 잘 키우고 싶고, 착한 딸도 되고 싶고, 작업도 잘하고 싶고 그렇지만....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가장 최고니까! 아버지의 코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는 폐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고 난 뒤, 5일만에 병원 퇴원을 하며 함께 시골에 왔다. 작업장에도 들렀는데, 아프셨는데도 그 사이 이렇게 정리를 잘 해두신걸 보니 참 몸을 움직이는걸 좋아하시는 건 여전하다 싶었다. 나도 아버지의 그런 면들을 닮았다.

할아버지의 작품을 처음 보는 아기가 돌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아래에 깨진 돌들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와 손녀.
이 흰색 단 아래에는 돌들이 가득 가득 쌓여있다. 아직 그 돌들은 바깥 구경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아빠의 작업장에서 발견한 옛날 잡지. 지금이랑 비교하니 느낌이 너무 다르다. 울 아빠 너무 많이 늙어버리셨네...ㅠㅠ
요즘은 찾기 어려운 상아. 아버지는 내 도장도, 울 아기의 도장도 모두 상아에 새겨주셨더랬지. 귀한 도장이다.
해남 옥돌인데, 일일이 다 갈고 다듬어서 만드신 도장이다. 아버지가 아주 오래전 해남 옥돌을 사들이기위해 아파트를 팔고 그 돈으로 억대의 돌들을 다 사들이셔서 해남에는 옥돌이 없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루머가 아니고 정말 사실이다.ㅎㅎㅎ 아버지가 해남에 있는 돌들을 다 사셔서 이제는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6000점이나 되는 전각 작품들이 다 그 해남옥돌로 만들어졌다.
이런 돌들은 중국산 돌이다. 해남 옥돌과는 차이가 나는 돌들이지만 이 또한 구하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는 <성서> 신약과 구약을 6년만에 돌에 새기셨고, 최단기간 최다전각으로 세계 기네스를 보유하고 계시다. 작품들 사이에는 아버지의 명예가 소박하게 놓여있다.
이 돌이 금보다 비싼 돌이라는 "계혈석"이다. 이름은 마치 닭의 핏빛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인데, 붉으면 붉을수록 훨씬 가치가 높다고 한다.

아빠의 칼들들 보고 있으니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네. 아버지가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버지가 작업도 계속 하시고, 또 아버지의 작품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이제 곧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걱정이 많다. 수술이 잘 되서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을 뵐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아버지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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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Diary2023. 5. 15. 12:06

# 아기가 나에게 온 걸 처음 확인해봤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7년의 난임에 급히 시작했던 시험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던 다양한 검사들과 시술 과정들은 꽤 버틸만했고, 두줄을 봤던 그 순간! 내 마음은 마치 헬륨 풍선처럼 붕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부터 안정기가 될 때까지 걱정으로 똘똘 뭉친 무거운 돌 들을 하나 둘 씩 내려놓았던 지난한 시간들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렇게 한번에 아기가 나에게 와준건 정말 신의 도움이자 인생에 한번뿐인 큰 선물같은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그때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었다. 

# 작년 말부터 다시 시작한 시험관은 4년이나 지나선지 예전과는 달랐다. 다시 재발한 용종을 또 떼어내야했고, 내막의 두께때문에 이식이 중단되었다. 시작한지 5-6개월만에 첫 이식을 했는데, 피검을 하기도 전에 너무 단호하게 한줄인걸 발견하고 이번에는 실패를 완벽하게 직감했다. 4년 전, 붕붕 뜨던 헬륨 풍선같았던 내 마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풍선은 펑 하고 터져서 아주 아주 무겁게 저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다들 예전처럼 순조롭게 잘 될거라 했다. 이번에도 예전 처럼 바로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가는 매일 매일 나에게 동생 이야기를 했고, 엄마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이식한 상태였을 때 아기는 기린 그림을 그렸고, 엄마 기린 배에 아기가 있다면서 동그랗게 배를 크게 그린 다음 그 안에 아기 심장을 그려달라고 말했다. 내가 작고 빨간 심장을 그려주니 아기는 만족스러워 했다. 엄마 배에 착 붙으라며 배를 만져주던 아기의 따스한 손이 생각난다. 기다림에 지친 아기는 이제 거의 울먹이며 말한다. "엄마, 동생은 언제 생기는거야? 동생은 왜 안나와?" 그러면 나는 계속 웃기만 한다. 아기에게 할 말이 없어서. 다음이 있는거니까. 응 다음에 또 하면 돼. 하면서 다시 이식을 했는데 이번에도 또 실패를 하고 말았다. 아기는 내 뱃속에 또 아기가 있다고 말했는데. 괜한 기대를 품었나. 시간이 흐르며 괜찮았던 멘탈은 점점 파사삭하고 무너지는 것 같다. 그리고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내 몸과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눕지 않아도 된다, 눕눕하는건 더 착상을 방해하는 행동이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가벼운 산책 정도를 하는게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전문가의 의견대로 열심히 따랐을 뿐인데, 눕지 않아 실패했다고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려오니 마치 내 잘못으로 인해 이식에 실패했다는 것 처럼 들려 너무나도 힘들었다. 시험관은 내 자의로 시작한 게 아니다. 모든게 울 아기의 바람으로 시작한것이고, 너무 간절히 동생을 바라는 아기를 볼때마다 엄청난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다시 처음부터. 배에 하루 세번씩 주사를 놓고, 난자 채취를 하고, 이틀에 한번씩 초음파를 보고, 약을 몸에 주입하며 그렇게 지내야 되는 것인지 너무나 고민이 된다.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면 울먹거리는 아기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간이 이렇게 확 확 지나간다. 나의 일상을 다시 되돌려놓고 싶다. 이번 여행은 어쩌면 정말 내가 너무나도 간절히 원해서, 가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기와 함께 가는 여행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믿어보련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나은 상태의 내가 되어 오기로. 그리고 내가 하고싶은 작업을 잘 하는 내가 되기를. 지나가는 시간을 두려워 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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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Works2023. 5. 15. 11:26

https://www.arthub.co.kr/sub01/board05_view.htm?No=47176

 

아트허브 :: 서고운展

      전시 개요 / 평론 Untitled Document 서고운展 Seo Goun Solo Exhibition :: Painting ▲ 서고운 작가 ▶ 서고운(Seo Goun 徐고운) 일정 ▶ 2023. 05. 02 ~ 2023. 05. 29 관람시간 ▶ Open 00:00 ~ Close 24:00 ∽ ∥ ∽ 아

www.arthub.co.kr

 

서고운 _내 몫의 삶 The life of my share, 112.1X145.5cm, Oil on Canvas, 2023
서고운_ 포옹 2 Hug 2, 35X137cm, Oil on Canvas, 2023

 

서고운 _공 (空)의 자리 Empty Place, 22X27.3cm, Acrylic+Oil on Panel, 2023

 

서고운 _두 여자 Two women 27.3X34.8cm, Oil on Canvas, 2023

 

 

아트허브의 후원으로 온라인 갤러리에 작품을 소개하게 되었어요. 2022-2023 신작들 11점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goun
Works2023. 5. 8. 17:07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