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24. 6. 19. 15:08

나는 정보라 작가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취미가 데모이고 부조리한 상황들에 다한 항의를 담고 싶으셨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스스로 SF작가라고 말하신 적도 없으니 그런 쪽으로는 기대를 하지않는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쨋거나 부커상 후보에도 오르셨고, 책도 자주 내시니까 열심히 전업작가 생활을 하시는구나 했는데, 전업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걸 이번 책을 통해 알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읽은 글로써만 이분의 작품들을 이해하고 쓰는 감상평이라 하겠다.
처음 몇몇의 단편을 읽고서 엄청 실망스러웠다. [여자들의 왕] 그 때의 실망감과 비슷했다. 이유는, 이런 중대하고 가볍지 않은 소재들을 가지고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나?였다. 소재를 그저 툭 던져놓고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쓴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문장 자체를 엄청 고민하고 퇴고하며 쓰는 게 아니라 투쟁과 운동에 몰입된 자신과 동물권 관련된 이야기를 그저 툭 던져놓는 느낌.(던져놓는게 뭐 어때?라고 말 한다면 할말 없지만 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글빨이었다.)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이야기의 구성에 있어 탄탄한 구조가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문장들도 성의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되어 있다. 뭔가에 꽃히면 바로 그냥 파바박 하고 빠르게 써 내려가고 뒤 안돌아보는 느낌이다. 문장은 정제되어 있지 않고, 어떤면에서는 거칠고 단순하다. 경북지역의 외국 투자자 공장 부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몇문장으로 그냥 끝내버리는 패기. 답답하게 계속 검은 덩어리 얘기만 주구장창 나오다가 결국 그게 고래가 되어 자신들의 외계 바다로 들어갔다는 결말. 해파리는 또 어떻구? 해파리에서는 분명 죽음과 삶에 대한 고찰이 있었다. 그래서 이건 좀 읽어볼만 한가 싶다가... 일기처럼 쓰여진 작가의 말을 읽고 또 한번 실망. 해파리라는 소설에서 어디에 '정신 감응'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죠? '정신 감응'이라는게 조금이라도 설명이 되었다면 이해를 할텐데, 그렇게 단어 혹은 글로 대충 툭 써놓으면 끝나는 그런 둔감함이 나는 너무 불편한 것이다. 좀 더 깊이 있게 다룰수는 없는건가? 더 예민하게 바라볼 수는 없는건가? 왜 선과 악은 그렇게 단순하게 그려지고 이런 어두운 소재들을 가볍게 다루어야 하지? 내가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서 더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작가님이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면 저주토끼 번역가님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거나…)
그런데 사실 이런건 다 개인의 취향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분은 정보라 작가님의 글이 재미있기 때문에 좋다고 하고, 어떤 분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고도 하는데, 내 기준에서는 신선한것도 없고 재미도 없고 산만하고 가볍다고 느낀다. 이건 아주 주관적인 감상이다. 아주 솔직하게는… 정말 좋은 작가들이 많은데 그런 작가들은 과소평가 되고, 누군가는 전업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서도 과대평가 되는 현실이 싫은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내 시간을 들여 감상평을 남기고 있네. 이것 또한 작가님에 대한 애정일까… 강의하고 데모하면서 소설을 쓴다는 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남기고자 하는 그 열정을 내가 잘 몰랐을지도. 아무튼 나는 또 다음 책이 나오면 읽어볼 것 같다.

Posted by goun
books2024. 6. 19. 15:07

박문영 작가님의 이전 책에서는 죽음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가 보였다면, 요즘은 인간의 탄생과 그로인한 육아의 노동을 넘어 선 사랑과 이해(애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관념들은 싹 다 버리고, 전복하고, 비틀면서 다채로운 구조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문장 하나하나 얼마나 많은 퇴고 끝에 완성을 했을까… 얼마나 연구를 많이 하셨을까 그런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주인공들 뿐만아니라 그 주변 것들에까지 다양한 연구와 노력의 흔적들이 느껴지니 말이다. 하나라도 가벼이 넘기지 않고 어떻게하면 나의 상상을 현실처럼 그려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의지! 그리고 매번 결론은 상상 그 이상이다.

“연음은 땅에 누워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는 무주지 사람들이 처음에 품은 질문을 사랑했다. 열린 강령, 양육 수칙보다 더 자주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을 꿈꾸지 못하는 인간이 인간일까. 자신과 이미 닮은 것만을 사랑하는 존재가 아름다울까. 연음은 그런 물음을 조용히 곱씹어보던 시간이 좋았다.” -p.40

“지구가 열악한 행성이 된 이유를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답할 수는 없었다. 그건 누군가 죽은 이유를 심정지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니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했다. 지구가 열악한 행성이 될 때까지 누가, 어떻게 살았나. 왜 그렇게 지냈나.”
-p.41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나는 박문영 작가님의 책들이 너무 좋다. 그래서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뭐라도 남겨놓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SF 독서모임에서도 이 책을 추천했고 바로 다담주에 읽고나서 토론하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된다.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