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일
# 나는 요즘 엄청 아름다운 일을 하는 중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기약없는 일이지만 이걸 한다는 것만으로도 현대의학에 대한 호기심이 나름 충족되고 있는 듯하고, 꽤 재미난 것 같다. 열흘간 배에 직접 주사를 놓은건 16대다. 하루에 1대씩만 맞다가 하루에 2대씩으로 늘어났고 채취 이틀 전(마지막 배주사)날은 3대를 맞았다. 처음 주사를 놓아야 했을때는 배운대로 하면 잘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정말 20분 가량을 주사 바늘만 쳐다보며 배에 바늘을 찔러넣질 못했다. 결국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찔렀는데, 찌르고나니 사실 그리 아프지 않았다. 근데 왜 눈물이 안멈췄던 거지? 그냥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아랫배에는 주사바늘 자국, 피맺힌 자국, 작은 멍들이 생겼다. 매일 아침마다 주사기를 꺼내고 배에 찔러넣는데, 이것도 처음이 힘들지, 하고나니 별거 아닌 것. 뭐든지 시작이 제일 어렵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2대 중 1대의 주사가 꽤나 아프다. 그래서 그 주사를 놓을때마다 덜덜 떨게되는 것. (그래도 타투보다 훨 안아픈데 말이다.)
# 신랑은 내 옆에서 이거 보다 더 힘들었던 순간도 많지 않았냐며 잘 할수 있다고, 걱정말라고, 말해준다. 신랑의 그 한마디면 나는 다시 두려움을 이겨내는 천하무적이 된다. 배주사 맞고 아파하면 가만히 배에 입맞춰주고 꼭 껴안아주면서 내가 아프니 속상하다 말해주는 신랑. 그런 마음 씀씀이가 예뻐서 나는 더 힘을 내야한다고 맘 먹는다. 우리가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에도 물이 흘러가듯 너무 자연스럽게 모든일들이 순조로웠다. 마치 하늘에서 길을 터 주듯이. 그런데 지금도 그때가 생각날만큼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하늘의 뜻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바로 되지 않더라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게 하늘의 뜻이라면, 더 더 나은 시기가 있을거라 믿으면서.
# 남의 아이가 이뻐 보일때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될 준비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 아이만 이뻐하는 그런 이기적인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 '준비'라는 것은 꽤나 오래걸렸고, 내가 작업을 잠시 쉴때 그 누구에게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를 기다렸다. 그게 올해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마음들이 커졌을때가. 그러고보면 나는 작년까지 쉬지않고 작업을 해왔고, 개인전 10회를 딱 채웠다. 2018년은, 지금껏 전시를 해오면서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던 해였고, 그래서 더욱 힘들었던 시기였다. 작년의 크고 작은 고비들을 넘기면서,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만 내 허기를 채우는것에 대해 조금은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큰 선택의 갈림길 위에 놓여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든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매일 고민하고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막상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점점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누구나 준비가 완벽한 상태로 엄마가 되는 사람은 없듯이, 나도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 이제 나도 몇년 뒤면 마흔이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남은 30대를 잘 보내야겠다는 마음 뿐이다. 그리고 남은 30대에 조금은 더 행복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다가오는 전시는...
◈<멈춤과 통찰 Samantha & Vipassana _인타라의 그물>전
2019. 5. 15 - 6. 16, 5. 15일 오픈 / 갤러리 수 / "김용호, 이피, 서고운, 최선" 4인전
◈<욕 욕 욕> 전
2019. 5. 17 - 5.31, 5. 17일 오픈 / 시대여관 / "김세진, 김시하, 박경률, 서고운, 전미래, 정고요나, 유재인, 한석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