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사이-존재, 모호한 것, 혼합된 것, 경계가 사라진 것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들의 공통점이라면 연약하고,알아채기 어렵고,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바운더리-경계에 있는 것들 사이에서 인간의 불안함에 대해, 부패된 사회 속의 무기력함에 대해, 목적이 사라진 무의미 안의 죽음과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계가 사라진 곳은 불안과 공포를 증폭하는 장소이지만, 나는 그 장소가 동시에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그림안의 형상들과 장소는 그런 역할을 위해 구성된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작은 죽음들’과 ‘소멸되는 것’, ‘혼돈’과 ‘끝’, ‘파국의 히스테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리고 있는 가짜 욕망들, 가짜 인생, 가짜 열정, 가짜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매 순간 떠오르는 형상들과 텍스트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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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세계 / 무의미한 행진 / 최후의 그림을 그리는 손과 테러리스트 / 무례한 복음 / 달이 뜨는 시간 / 거리의 노래 / 새벽세시의 독백 / 거지들 / 황무지 / 후유증 / 교수형 집행인 / 불모의 여인 / 나는 수직 / 달의 변형 / 덫과 독 / 검은 진실 / 구경꾼들 / 함정 / 현재형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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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텍스트는 여전히 단순한 기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내 머릿속의 이미지에 꾸준히 들러붙는다. 그것이 새로운 기의를 만들어내고, 알레고리를 이끌어낼 것이다. 나는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최대한 구글링을 하지 않으려고하고 직접 찾아나선다. 그 방법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탐방하며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선택된 이미지들은 매우 거칠고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에너지를 지니게 된다.
나는, 좀비처럼 <죽음 앞에 목도하는 인간이라는 이름>과 <영원한 노예로 남을 수도 있는 또 다른 인간이라는 이름>에 집중하며 작업하고 있다. 나는 어쩌면 지금 현재, 이 파국이 가져올 수 있는 끝을 보여줌과 동시에 스스로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애도를 요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 고민들은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